사릉 ;
사릉은 조선 6대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 송씨의 능이다.
정순왕후 송씨는 군부인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 처음에는 대군부인의 예로 묘소를 조성하였다.
그 후 1698년(숙종 24)에 정순왕후로 복위되어 묘소를 능제에 맞게 다시 조성하였다.
능침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였고 석양과 석호를 하나씩 줄였으며, 무석인을 생략하였다.
문석인과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은 정종의 후릉(厚陵)의 능제에 따라 작게 조성하였다.
진입 및 제향공간에는 홍살문, 정자각, 비각을 설치하였다.
정자각은 다른 왕릉에 비해 아담한 모습이고, 정자각으로 연결되는 향로와 어로는 중간에 끊어져 있다.
단종의 비 정순왕후의 단릉, 정순왕후 송씨는 1440년 정읍 칠보면 동편마을에서
부사 송계성의 증손녀로 태어났다.
1454년 1월 22일 경복궁 근정문에서 가례를 올린 송씨는 왕비에 책봉되었다.
열네 살이란 어린 나이에 국모가 되었다.
세조 즉위와 함께 단종이 상왕으로 물러앉자 의덕왕대비가 되었고,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자 서인이 되어 궁 밖으로 쫓겨났다.
지아비가 보고 프면 영월이 있는 동쪽 언덕에 올라 어린 신랑의
안위를 걱정했고, 단종이 죽임을 당한 후에는 동망봉에 올라
지아비를 그리워하던 송씨는 1521년(중종 16년) 6월 4일 춘추 81세로
쓸쓸히 눈을 감았다.
단종의 비 정순왕후는 여산송씨 집안에서 태어나 전주이씨 집안으로
시집갔지만 왕실 능역에 뼈를 묻지 못하고 정씨 선영에 묻힌 것이다.
이로부터 177년 후인 1698년(숙종 24년) 11월 8일, 노산군이 단종으로
추복되면 송씨도 정순왕후 추복되었으며, 이름 없는 묘로 남아 있던
송씨 묘 역시 사릉으로 불리게 되었다.
사릉은 왕릉으로 조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규모가 소박하고 석물이
단출하다. 왕릉제도를 따라 곡장은 둘렀으나, 병풍석과 난간석이
없다. 추복 능이기 때문에 무인석도 없다.
'조선왕릉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효릉 서삼릉 (2) | 2023.10.21 |
---|---|
홍릉, 유릉 이야기 (1) | 2022.12.13 |
동구릉 (0) | 2022.11.21 |
헌릉과 인릉 (0) | 2022.11.09 |
선릉과 정릉 이야기 (0) | 2022.11.07 |